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단순한 사찰 의혹에서 전·현 정권의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어느새 4·11총선의 메가톤급 돌발변수가 됐다. 폭로, 은폐, 진실공방 등 정치권의 해묵은 선거 레퍼토리가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돌발변수가 모처럼 만들어진 정책선거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아닌지, 후보자의 자질·도덕성이 아닌, 정당과 정권의 도덕성에 의해 지역구 선거가 좌우되는 것은 아닌지 매우 염려스럽다.
지난달 29일 불법사찰 문건 2619건을 폭로한 KBS 새 노조는 애초 모든 문건이 2008년 이후 작성됐다는 주장의 오류를 바로 다음날 시인했다. 공교롭게도 29일은 4·11총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이다. 검찰 또한 2010년 수사가 축소은폐 방조 의혹을 받자 ‘사즉생’의 각오로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혐의를 밝혀낸다면 부실 수사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에 곤경에 빠졌다.
민주통합당은 대통령 하야까지 언급했다. 새누리당의 특검 제안을 수용했다가 번복하며 검찰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리자고 주장했다. 이는 모처럼 검찰을 신뢰하는 모양새로 총선용 소재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쉽게 노출시켰다. 정권심판론과 연결해 최소한 10일은 끌겠다는 심산이다. 그래서 공천 잡음으로 하락한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에 특검을 제안했다. 박근혜 위원장도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며 집권 초기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현 법무장관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진실 규명보다는 MB정권과의 거리 두기와 사찰정국의 조기 진화에 집중하고 있다. 선제 대응만이 살길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현직 정권 모두 민간인 불법사찰에 연루됐다. 정치권은 이해관계에 매달려 더 이상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지 말고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은폐’와 ‘폭로’는 권위주의 시대의 아픈 상처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를 사찰하는 것은 구시대의 악습이다. 과거 정권, 현재 정권, 그리고 미래 정권에서도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촛불시위 이후 부활해 정권의 사조직으로 전락했다. 과거 정부의 조사심의관실이 더욱 음성적으로 변질됐다. 이제는 공직 감찰을 빌미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사찰을 자행할 수 없도록 법적 책임 부여는 물론이고 공공기관으로서 상시적인 감사 대상이 돼야 한다. 조직과 운영이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
따라서 검찰 특별수사본부 설치나 특검 실시와 같은 ‘사후적’ 해법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더욱 시급한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적’ 제도 개선이다. 공직자윤리지원관실에 의한 감찰 대상 공직자의 범위, 감찰 방법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불법사찰이 방지될 수 있다. 또한,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역 국회의원도 사찰에 꼼짝없이 당하는 현실에서 일반인은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다. 불법사찰에 노출된 피해자 사전 보호 와 사후 보상을 위한 법적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안철수 현상’과 ‘정당정치의 위기’는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됐다. 권력 실세의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 불법적인 돈과 조직을 동원한 구태 선거가 아직도 심각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치불신이라는블랙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비록 고통스럽지만 불법사찰을 근절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제발 새로운 국회는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의 국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론/윤종빈] 불법사찰, 발 못붙이게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