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 '몸싸움방지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 요건 강화, 의안 신속 처리제,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제도(필리버스터) 도입, 국회 내 질서 유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이 법안은 24일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쟁점 안건 심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며, 소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발의됐다. 그리고 제18대 국회에서 보여준 여당과 야당의 폭력적 대립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과 자성(自省)의 목소리에 의해 마련된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따르면 그동안 국회 운영 및 결정에 적용되었던 '다수결 원칙'이 '절대 다수결(Super Majority) 원칙'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어 심도 있는 검토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 그간 국회는 중요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해 사회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런데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180석)으로 정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과 신속 처리제 요구 기준은 국회의 입법 및 결정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 본회의 무제한 토론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의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의미가 있지만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 국회 운영방식과 맞지 않다. 미국 상원과 같이 규범과 관습, 의원의 소신을 중시하는 소규모 의회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의원의 자율성보다는 당론을 중요시하는 우리 현실에서 국회 운영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신속 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된 뒤 소관 상임위가 180일이 지나도 심사를 완료하지 못하면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토록 하는 신속 처리제는 소수당의 동의 없이는 신속 처리 안건 지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의장석 또는 위원장석 점거나 의원의 회의장 출입을 방해한 의원에 대한 징계안은 본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던 국회가 과연 단호한 모습을 보여줄지 의구심이 들며 징계 수준도 약해 국회 내 폭력 예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국회에서 합리적인 합의 도출과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보다는 국회 운영방식 및 제도에 대한 재고찰이다. 무엇보다 정당 간 합의에 필요한 충분한 대화와 토론이 소위원회와 상임위원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안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합의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공청회와 청문회의 활성화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대화의 장을 넓혀야 한다. 이와 함께 본회의 법안 심사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기 위해 고안된 전원위원회제도가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 주요 사안 논의를 위한 여당과 정부 간 당·정 협의에 야당을 포함시키고 논의는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 회의장 질서를 위해서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위상 강화와 외부 인사 과반 참여, 강한 처벌 규정 제정 등이 요구된다.

국회 선진화와 폭력 없는 국회가 이번 국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대화와 타협에 의한 안건 심의, 소수 의견 개진 기회 보장, 물리적 충돌 방지보다는 국회 무기력을 가져올 것이다. 국회 선진화와 몸싸움 방지는 정당 간 혹은 의원 간 의견 상호 존중, 국회의 헌법 및 국회법 준수, 의원의 자율성 보장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